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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곤두서거나 불안한 감정에 도리 없이 휩싸이는 순간은 하루에도 제법 빈번하다. 서둘러 덮어버리는 게 상책일 수 있겠지만 한 번쯤 그것을 붙잡아 들여다볼 용기를 낸다면 꽤 유용한 스위치로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을 안다는 것만으로 이 문제(말썽)를 다른 문제(물음)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은주는 캔버스를 마주하기 전에 공들여 여러 단계의 준비운동을 하는데, 무엇보다 대상에 대해 골몰하는 소요의 절차이겠지만 긴장된 마음을 낮추기/들여다보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드로잉, 모델링, 연출, 촬영. 긴 탐색의 과정이 몸으로부터, 몸 안에서 견고해지면 그것의 한 귀퉁이를 손에 쥐고, 시작.




전시 ⟪노트 투 리프 Knot to Leaf⟫를 구상하며 작가는 정원을 떠올렸다고 한다. 빈 캔버스를 채우는 일을 유휴지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가정해 보자. 경계가 세워진 땅을 판판하게 다듬고, 그 안에 다시 구획을 나눈 뒤 적절한 조합을 상상하며 묘종을 심는다. 모난 곳 없는 완성을 위해 다듬고 매만지는 손, 계획의 감시 아래 조정되는 수많은 의도들의 조합. 서로는 잘 들어맞는 은유임이 분명하다. 지난 전시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성질과 질감을 가진 사물들의 집합, 크기에 대한 상대적 감각, 사물의 운동성과 몸의 움직임, 투과와 반사를 통해 대상의 형질을 이미지로 재현했다. [1] 이번에 그의 정원에 심어진 묘종들은 말라버린 꽃의 줄기와 철사, 실 그리고 이들을 엮어주는 녹았다 굳어진 재료들이다.



정원은 네 개의 테마를 품고 있다. 전시장 전면 창과 내부의 벽에서 크기로 압도하는 <매듭들-구부러진 선>(2023)과 <매듭들-열매>(2023)는 사물들이 뒤엉켜 점에서 선으로, 덩어리로 맺어지고 있는 풍경을 확대하여 그렸다. 덕분에 화면을 가로지르며 찐득하게 흩날리는 형상을 쫓는 시선이 바쁘기 그지없다. 두 번째로 <스틸 라이트>(2023) 시리즈는 선과 덩어리가 조금 더 식별이 가능한 형상들을 찾아간다. 마른 가지가 철사에 접붙고, 변성되었을 눅진한 재료가 매듭처럼 몸을 감아내는 원형의 구조 뒤로 어스름한 배경의 색이 형상들에 일렁이는 리듬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렁한 것이 굳어가고, 곧은 것이 차츰 쇠하고, 새벽에 먼동이 밀려오는 사이의 시간성은 그의 회화를 길게 관통하는 주된 주제 중 하나이다. 줄곧 노은주의 사물들은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듯 바닥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 작품들에는 공간의 개연성을 읽을 수 있는 요소들이 사라졌다. 사물들 간의 위계를 드러내는 그림자도 사물 너머로 소거되어 어떤 장면은 마치 공중에서 부유하는 것 같다. <스틸 쉐도우>(2023)의 “사물은 빛의 방향에 따라 마치 그 자체가 그림자인 듯 어둠 속에 몸을 숨길 때”[2]를 기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협업의 연장선에서 발표하는 ‘긴 형태’[3]들은 자투리 천으로 만든 캔버스에 정원을 세워 두었다. 그에게 협업은 긴장된 상태를 긍정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협업의 골칫거리이자 묘미가 불가역적 조건이 타인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도시의 정원에도 자투리땅만 허락되니 덕분에 정원 은유가 완성되어 반가운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노은주는 준비운동을 거치며 획득한 촉각적 경험을 최대한 붙잡기 위해 사진으로 남긴 뒤 화면 위에 되살린다. 경험 안에는 딱딱하고, 물렁하고, 뻣뻣하고, 잘 휘어져 다루기 까다로운 사물의 물성들뿐만 아니라 시간의 변화, 빛과 시선의 이동, 사물의 미세한 떨림처럼 예컨대 운동이라고 불릴만한 것들도 포함된다. 시각과 촉각의 작용을 통해 옮겨진 화면 속 형상들을 따라가다 보면 보는 이 역시 어렵지 않게 눈으로의 ‘만짐’이 이루어진다는 경험/착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촉지적(haptic) 감각이 말하고 있는 것이 작가가 경험한 그것일까. 그전에 작가가 옮겨놓은 정원이 사진으로 잘 가둬둔 그 시간의 단편만을 담았을까. 체화된 감각은 조금씩 아물거리기 마련이고, 그 사이에 부지불식 끼어드는 우연적 요소들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는 이에게 벌어지는 시선으로의 만짐에도 언어의 감각적 은유는 불순한 자국을 새기는데, 실가닥과 마른 줄기, 얽힌 철사와 열매, 매듭과 잎사귀라는 언어는 각자에게 유사하지만 무한히 넓은 스펙트럼의 표상을 남기게 된다.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 상상하는 것에 겹쳐지기도 또 조금씩 어긋나기도 하면서 우연과 감각의 얽힘이 발생한다. 손에 쥔 사진과 옮겨진 그림은 명백히 다른 두 장면일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 역시 나름의 운동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탁구공처럼 선명하게 튕기는 운동성이 아니라 공기 중에 부유하는 운동성. 쉽게 엉겨 붙었다 금세 떠밀려 버리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티끌의 운동성으로. 불안과 긴장 역시 몸의 떨림으로 전이되어 들러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그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정원의 조경은 솎아내기의 경주이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들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아야만 이기는 게임이다. 아무리 섬세하게 조경을 끝낸 정원이라도 나직한 바람이, 둥지를 튼 새들이, 뙤약볕 곤충이, 느닷없는 비가 시시각각 빚어내는 우연을 막지 못한다. 인위가 암만 바지런을 떨어도 넝쿨의 끈질김에 결국 한 귀퉁이쯤은 내어주게 되어있다. 견고히 쌓아 올린 기반에도 어떻게든 의심의 여지는 남아 있기 마련이며 도리어 우연은 우연이 아니며 온전한 우연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이것과 저것,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우연으로 오독한 서로의 반영이 있을 뿐이다. (조경이 거울의 다른 말이라는 소소한 발견이 불순한 즐거움을 남긴다.) 노은주의 이번 전시는 정원이라는 겹겹이 쌓인 의도의 울타리 안에 불현듯 스민 우연 아닌 반영, 그 얽힘의 운동성을 포착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글. 신지이(독립 기획자)





[1] 노은주의 2021년 개인전 ⟪Blue Window⟫에 대한 필자의 글 『어스름의 면과 선과 덩어리』 참조.

[2] 노은주 작가노트

[3] 손주영 작가와 함께하고 있는 OC 프로젝트이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캔버스를 사용하는 제작 조건상 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긴 형태-OC-2023-1>과 <긴 형태-OC-2023-2>는  <매듭들-구부러진 선>, <매듭들-열매>와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를 제작하고 남은 천을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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