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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주 개인전 «Walking—Aside»에 부쳐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2019년 12월, 노은주 작가의 개인전 «Walking—Aside»가 개최되었다. 작가에게는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가진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첫 개인전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이 경리단 지역에 오픈한 후 얼마 되지 않은 2013년도에 «상황/희미하게 지탱하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노은주 작가는 이후에도 종종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진행하는 전시에 참여해 왔기 때문에 그 작업 방향의 흐름과 변화를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대상에 대한 표현력도 뛰어나고 화면 구성에 있어서 논리적인 개념이 탄탄하게 깔려있는 작가라 작업의 변화가 뚜렷할 때쯤 새롭게 이전한 공간에서도 그의 전시를 더 보고 싶었던 터였다.

노은주 작가의 작업은 구상 회화이다. 보고 그리는 대상이 정확히 존재하고 있다. 첫 개인전에서 강조했던 것은 작가가 선천적으로 접하고 있는 환경인 아파트라는 구조와 이를 둘러싼 상황이었다. 조형적으로는 기하학적인 선과 면의 집합체이며, 사회적으로는 누군가의 부의 상징, 투자의 대상, 그리고 자본과 결부되어 소유하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한 아파트라는 거주 시설이 노은주 작가에게는 덧없고 일시적인 존재로도 느껴졌다. 그래서 언론에서 드러나는 사진들을 참조하여 용도가 사라지고 물질만 남은 철거되어 허물어진 혹은 폐허로서의 건축 더미를 그리곤 하였다. 이렇게 희미하게 지탱되고 허물어진 구조 등을 화면 속에 그려냈던 이후, 작가는 작업실 안에서 아파트 모형을 종이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는 조형 오브제로서 모델링 되었다. 얇고 연약한 종이를 접어서 테이블 위에 세워두고 화면 속에서는 견고한 석고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그리는가 하면, 드로잉 형식으로 선과 선이 만나서 면이 되고 면과 면이 만나서 특정 각도를 이루는 구조물로서 그려냈다. 주변에서 발견되거나 만지작거리며 조형된 오브제들은 하나씩 혹은 특정 장소, 가령 작업실의 테이블 위 같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여러 가지를 적당히 늘어놓고 대상화하여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은 점차 회화가 만들어내는 공간이 현실의 공간과 관계를 맺는다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되었다. 

이번 전시 «Walking—Aside»에서 보여주고 있는 캔버스 속에는 그의 작업 공간에서 사용하는 선반에 배치한 몇 가지 사물들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대상을 연출하기 위하여 입체로서 모델링을 하고 공간에 배치하여 정확한 구도를 결정한 후에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을 가진다. 윌링앤딜링 공간 사이즈를 정확히 측량하고, 이 속에서 이미지와 공간, 관객과의 관계를 시뮬레이션해 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캔버스 크기에 따라 원래 오브제 사이즈가 증폭되었고, 이 오브제들이 놓인 테이블 폭정도 깊이의 공간도 그려졌다. 그리하여 작가의 의도처럼 마치 연극 무대의 좁은 공간처럼 연출되었다. 캔버스 속에서 한계 지어진 공간의 깊이는 실제 전시 공간 속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관객은 전시 공간을 거닐면서 화면 속 공간을 연장시키고 있는 그 주변으로서의 공간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

노은주 작가의 이러한 화면 구성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조토(Giotto di Bondone)가 스크로베니 예배당 내부에 묘사한 벽화 시리즈와 닮아있다. 노은주 작가의 화면은 내러티브가 삭제되고 공간과 오브제만 남겨진 화면이긴 하지만, 실제 물질을 경험하는 듯한 감각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공간개념을 표현하였던 화가들이 당대에 획기적으로 도입한 방법을 참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중세 말엽에서 초기 르네상스 시대는 이전 중세시대의 절대적인 비현실성에서 벗어나고자 대상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시작되면 형성된 현실감을 화면 속에 표현하였다. 그래서 특징적으로 보여지는 매끄러운 질감, 납작한 평면을 세워놓은 듯한 식물, 돌, 건물의 묘사, 원거리와 근거리의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 공간감 등은 마치 연극 무대를 재현한 듯한 방식이었고 노은주 작가는 이를 흥미롭게 관찰하고 적용하였다.

이는 평면과 입체 간의 관계를 상기시키기도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드로잉들인 <밤과 낮의 면>(2019)시리즈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모형 제작 이전, 그리드적 모듈을 구상하여 그림의 소재가 될 형상인 종이 모형의 전 단계이다. 드로잉 상태에서 구현되는 공간이자, 선, 선이면서 동시에 면인 이 기하학적 조형의 구조는 노은주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공간과 오브제 간의 관계, 화면과 관객과의 관계를 설정하고자 하는 태도를 잘 드러낸다. 이 드로잉의 전 단계로서 그렸던 2018년 드로잉 작업인 <Grey side> 시리즈를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선과 선의 만남과 연장과 그로부터 형성되는 면과 면의 관계와 면과 공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쉽게 짐작할 것이다.

지금 노은주 작가 세대의 많은 회화 작가들이 ‘추상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이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들은 모더니즘 시대의 추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엇을 드러내기 위하여 무엇을 삭제해 나가고 덧붙이는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몸이 캔버스와 반응하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추상의 탐구로 인해 표면의 흔적, 색, 밀도감 있는 중첩과 비정형적 이미지들이 회화성을 보다 강조하고 있는 와중에 대상을 충실히 모델링을 하면서 철저한 연출을 지속하고 있는 노은주 작가의 작업 이미지는 또 다른 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현실과 이미지 간의 관계 맺기가 가능할 수 있는 작가의 제안이 그 가능성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글.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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